굴렁쇠

굴렁쇠와 함께 달리던 시절, 잊힌 놀이터의 기억

wizard-jeong 2025. 10. 10. 10:33

굴렁쇠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던 삶의 리듬이었다.
흙먼지 날리던 놀이터의 웃음 속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공동체의 온기를 다시 만난다.

 

서론|굴렁쇠와 함께 달리던 시절, 잊힌 놀이터의 기억

아스팔트가 아닌 흙바닥이 놀이터였던 시절이 있었다.
해 질 무렵 마을 어귀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울려 퍼졌다.
그 중심에는 바퀴 하나와 기다란 막대기 하나, 그리고 아이들의 숨결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굴렁쇠였다.

굴렁쇠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굴렁쇠는 세상과 통하는 창문이었고,
자유와 경쟁, 우정과 성장의 모든 감정이 담긴 상징이었다.
이제는 잊혀 버린 그 놀이터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한국인의 공동체 정신과 순수함,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의 온기를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은 굴렁쇠와 함께 달리던 그 시절의 기억을 따라가며,
오늘날 우리가 놓친 놀이의 의미삶의 균형을 되짚어본다.

 

굴렁쇠와 함께 달리던 시절, 잊힌 놀이터의 기억
굴렁쇠와 함께 달리던 시절, 잊힌 놀이터의 기억

 

흙바닥의 웃음소리|아이들의 순수한 놀이 세계

 

굴렁쇠가 굴러가던 놀이터는 도시의 공원처럼 세련되지 않았다.
흙먼지가 날리고, 신발은 금세 더러워졌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빛이 있었다.
당시의 놀이는 비싼 장난감이 아니라 상상력과 손재주로 만든 세계였다.
굴렁쇠는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놀이였다.

아이들은 폐자전거 바퀴, 쇠고리, 대나무 틀을 주워 와서
기다란 철사나 나무 막대를 손에 쥐고 골목을 누볐다.
누가 더 오래 굴리는지, 누가 더 빨리 달리는지 겨루며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웃었다.
그 단순한 원운동 속에서 아이들은 균형과 속도의 조화,
그리고 실패와 도전의 감정을 자연스레 배웠다.

굴렁쇠는 아이들에게 “자기 힘으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을 줬다.
바퀴를 밀면 움직이고, 손을 멈추면 멈췄다.
이 작은 경험은 스스로 조절하고 책임지는 능력을 키워주는 놀라운 교육이었다.
오늘날의 아이들이 버튼 하나로 세상을 조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이던 자기 주도적 놀이의 원형이었다.

 

굴렁쇠의 길, 함께 달리던 공동체의 기억

굴렁쇠 놀이는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할 때 더 즐거웠다.
마을의 언덕길을 따라, 골목 끝까지 줄지어 달리던 그 장면은
공동체적 삶의 축소판이었다.
아이들은 서로의 속도를 맞추며, 앞서가면 기다려주고,
넘어지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 안에는 경쟁보다 배려와 연대가 있었다.

굴렁쇠의 원은 ‘함께 도는 세상’의 은유였다.
누군가가 멈추면 바퀴도 넘어졌고,
함께 밀면 더 멀리 나아갔다.
이 놀이는 어른들이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이 몸으로 익히는 공생의 철학이었다.
그 시대의 놀이터는 단순히 노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배우는 사회의 첫 교실이었다.

그때의 굴렁쇠는 공동체의 리듬을 닮았다.
마을의 저녁 종소리와 밥 짓는 냄새,
어머니의 부름과 개 짖는 소리까지
모두가 어우러진 생활의 음악 속에서 굴렁쇠는 굴러갔다.
그 풍경은 지금 생각하면 단순했지만,
그 단순함이 바로 우리 삶의 균형이었다.

 

잊힌 놀이터, 멈춰버린 굴렁쇠의 시간

도시는 커지고, 흙길은 사라졌다.
굴렁쇠를 굴리던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그들의 자녀는 스마트폰을 굴리고 있다.
놀이터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거기에는 웃음 대신 정적과 화면의 빛만이 남았다.

굴렁쇠는 언제부터인가 교과서 속 단어로만 남았다.
아이들이 직접 흙을 밟고 뛰어놀던 시대가
환경과 안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사라진 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삶의 감각이다.
손끝으로 느끼던 바람, 균형을 잡으며 배우던 집중력,
그리고 친구와 함께 부딪히며 익히던 사회성 —
그 모든 것이 디지털 시대의 편리함 속에 잊다.

굴렁쇠의 부재는 결국 인간다움의 결핍을 의미한다.
사람은 몸을 움직이며 생각을 배우고,
놀이를 통해 관계를 배운다.
굴렁쇠가 멈춘 세상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 빨리 달려서 자신의 중심을 잃은 세상일지도 모른다.

 

다시 굴러야 할 바퀴|잃어버린 놀이의 복원과 미래

이제 굴렁쇠를 단순히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겨서는 안 된다.
그 속에는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적 가치가 숨겨져 있다.
균형, 조절, 협동, 책임 — 굴렁쇠가 가르쳐주던 것은
지금 학교에서도 가르치기 어려운 덕목들이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 놀이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굴렁쇠 체험 행사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
아이들이 직접 나무를 깎아 굴렁쇠를 만들고,
부모와 함께 굴리는 경험은
세대가 함께 웃을 수 있는 공동체 회복의 장이 되고 있다.

굴렁쇠는 단순히 예전 놀이의 복원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 필요한 **‘느림의 철학’**을 일깨운다.
빨리 가는 것보다 바르게 굴러가는 법,
혼자보다는 함께 굴러가는 법 —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인간의 본래 리듬을 찾게 된다.

굴렁쇠가 굴러가던 그 시절의 흙먼지 냄새와 웃음소리가
지금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삶의 복원이 될 것이다.
굴렁쇠는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
단지 잠시 멈췄을 뿐,
누군가가 다시 그 바퀴를 밀어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